다섯 개의 위성이 뜨는 곳에서도, 지지 않는 마음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매력적인 ‘할머니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물을 통해 소설은 어째서 어떤 고통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지, 생의 끝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자꾸만 묻는 듯하다. 문학상 이후 김초엽의 작품들은 더욱 확장된 세계를 그려낸다. 작가의 고민과 질문도 더 단단해진듯하다. 다섯 개의 위성이 뜨는 행성에 홀로 남겨져 외계인과 조우하게 될지라도(「스펙트럼」), 고통 없는 유토피아에서 짐짓 모르는 것처럼 질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때에도(「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를 알아야겠다고 용기 내는 마음,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말하며 지지 않는 마음, 분투하는 태도가 김초엽의 소설에는 있다.
[예스24 제공]
챕터마다 김초엽작가가 그려낸 가상의 배경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이버펑크 장르와 결합되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좋았다. 챕터마다 상징하고 있는 소수자들과 SF라는 장르가 만났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인데 장르를 만나고 나니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시각을 비틀어주는 부분들이 좋았다. 경각심을 주는 이야기책. 책이란 자고로 이런 맛이 있어야지!!! 라며 맛깔나게 읽었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를 보았을 때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일을 단계적으로 뒤틀어 버려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챕터를 적어보자면.....(스포 있음)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어떤 책 리뷰어가 작가는 지구의 삶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한마디로 정리된 듯하다.
- 스펙트럼
내가 상상한 루이의 행성은 영화 마션에 나오는 척박한 땅에 군데군데 푸른 녹지.. 다른 언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 또한 그저 태어난 김에 사는 생명체라는 부분이 매력적이었고 영화 '컨택트'가 떠올랐다. 외계인은 사람을 잡아먹고 지구를 정복하려고 전쟁을 일으킬 거야 라는 편협한 상상은 그저 자의식 과잉에 빠진 지구인들의 착각일 뿐...
- 공생 가설
류드밀라 행성 궁금하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결국은 돈이 따르는 곳에 사람이 따른다는 공식이 너무나도 슬펐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너무나도 많은 피해자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애달펐다. 가야 할 곳을 안다는 안나가 부디 가족들이 있는 행성으로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최재경은 자살이라는 타이틀로 비혼모, 동양인이라는 비주류였기에 사람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춰서 쉽게 평가절하했다.. 그래서 이럴 거야 저래서 이럴거야 라며 멋대로 분석하고 결론을 냈다. 하지만 최재경은 그런 그들을 보며 콧방귀 뀌듯이 '미안한데 난 너네들이 말하는 그 캐릭터 아니야'라는 듯 보여서 통쾌했다. 엄청난 예산을 계획적으로 들튀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가진 능력이 대단하다는 반증 아닌가. 결국 대단한 건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지.
책리뷰 /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0) | 2021.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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